영빈관 아카사카 이궁에 대해 About the State Guest House, Akasaka Palace
세계 각국의 국왕, 대통령 등을 맞이하며, 외교 활동의 화려한 무대가 되는 영빈관
영빈관 아카사카 이궁은 1909년에 동궁어소로 건설됐으며, 일본에서는 유일한 네오 바로크 양식의 궁전 건축물입니다
당시 일본의 건축, 미술, 공예계가 총력을 기울인 건축물이며, 메이지 시대의 본격적인 근대 서양식 건축의 도달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십수 년에 거쳐 일본이 국제 사회로 복귀하면서 외국에서 오신 귀빈을 맞이할 일이 늘어남에 따라 국가의 영빈 시설로 대규모 수리를 하였고,
일본식 별관 신설과 함께 1974년에 현재의 영빈관으로 새로운 행보를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후, 2009년에 실시된 대규모 수리 공사가 끝난 뒤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로서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제까지 많은 국왕, 대통령, 총리 등을 맞이했으며, 주요국 정상회의 등 국제회의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시설 개요
- 소재지
- 도쿄도 미나토구 모토아카사카 2-1-1
- 부지 면적
- 약 12만m²
- 본관 구조
- 철골 보강 벽돌 석조, 지상 2층(지하 1층)
- 총바닥면적
- 약 1만 5000m²
그동안의 발자취
1899~1909
동궁어소로 건설
메이지 시대의 서양식 건축 기술의 총결산
황태자 전하(후의 다이쇼 천황)의 성혼을 앞두고 서양식 동궁어소(황태자 전하가 사는 곳)를 새로 건설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메이지 시대의 서양식 건축을 주도한 영국인 조시아·콘도르 박사(고부대학교(현 도쿄대학)의 조가학과(현 건축학과) 교수)의 직제자인 가타야마 도쿠마의 총지휘 아래, 저명한 학자, 예술가, 기술자 등이 총동원되었습니다.
1923~28
섭정관 전하(후의 쇼와 천황)의 주거
1923
관동 대지진
1945~46
황태자 전하(상황폐하)의 주거
1948
황실 재산에서 행정 재산으로, 청사로 사용
제2차 세계 대전 후 소유권은 국가
전쟁이 끝난 후, 황실 재산인 아카사카 이궁 건물과 그 부지는 정부로 이관되었습니다. 국립 국회도서관(1948~61년), 법무청 법제 의견국(1948~60년), 재판관 탄핵재판소, 동 소추위원회(1948~70년), 법무성 송무국(1948~61년), 헌법조사회(1956~60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1961~65년), 임시 행정조사회(1961~64년)에 사용되었습니다.
1968
아카사카 이궁을 수리하여 영빈관으로
내각회의 의결을 거쳐 대규모 수리 공사가 시작
전쟁이 끝난 후, 십수 년이 지나 국제 관계가 긴밀화되고 외국의 귀빈을 맞이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국가의 영빈 시설을 정비하는 방침이 수립되었고, 아카사카 이궁을 영빈관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아카사카 이궁을 영빈관으로 수리하면서 문화재적 가치를 보존하고, 귀빈들이 쾌적하고 안전하게 머물 수 있으며, 공식 행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 등을 기본 방침으로 하여, 본관의 수리는 일본 예술원 회원인 건축가 무라노 도고에게, 그리고 일본식 접대를 위한 별관 신설은 같은 일본 예술원 회원인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로에게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1974
영빈관으로 개관
대규모 수리를 완공, 영빈관으로서 개관
1968년에 시작된 수리 공사는 6년 후인 1974년 3월에 완료되어, 영빈관으로 새로 개관했습니다.
2006~2008
헤이세이의 대대적인 수리
급배수관, 정보 관련 설비, 내진 보강을 위해 3개년 계획으로 수리 공사를 실시했습니다.
2009
국보 지정
창건 100년 후인 2009년에 국보로 지정
창건 당시의 건물인 옛 동궁어소(영빈관 아카사카 이궁)의 본관, 현관 및 계단 부속, 정문 및 담, 동서 에이샤(왕궁을 지키던 병사 대기소), 주 정원 분수, 주 정원 계단이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